사업계획서 작성 · 4분 읽기

떨어진 사업계획서의 여섯 가지 공통점

평가위원 자리에 앉아 보면 보이는 탈락 사유와, 각각을 고치는 한 문장.

떨어진 사업계획서의 여섯 가지 공통점

선정 결과 발표일 오후, 명단을 세 번 읽어도 우리 회사 이름이 없습니다. 어디가 부족했는지 묻고 싶은데 물어볼 데가 없습니다. 점수는 공개되지 않고, 평가위원이 누구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다음 공고에 같은 계획서를 표지만 바꿔서 또 냅니다. 그리고 또 떨어집니다.

저도 그렇게 세 번을 연달아 떨어진 뒤에야 계획서를 처음부터 다시 썼습니다. 이유를 제대로 안 건 몇 해 뒤 한 지역 기관의 평가 자리에 앉아 보고 나서였습니다. 하루에 수십 편을 읽다 보면, 떨어지는 계획서는 첫 두 장에서 이미 표가 납니다. 이유는 놀랄 만큼 비슷합니다. 아래 여섯 가지가 거의 전부였고, 각각 어떻게 고치면 되는지도 한 문장씩 붙였습니다.

첫 두 장에서 갈린다

문제 없이 제품부터 나온다

가장 많은 유형입니다. 첫 장부터 우리 제품이 얼마나 좋은지, 기능이 몇 개인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제품이 누구의 어떤 불편을 없애는지는 끝까지 안 나옵니다. 평가위원은 제품을 사려는 사람이 아니라, 이 돈이 어떤 문제를 푸는 데 쓰이는지 확인하는 사람입니다.

고치는 법: 첫 문단을 "누가, 언제, 무엇 때문에 곤란한가"로 바꾸고 제품 설명은 그다음 장으로 미룹니다.

시장은 큰데 들어갈 문이 없다

"국내 시장 규모 수조 원"으로 시작하는 계획서를 보면 평가위원은 속으로 묻습니다. 그래서 그중 얼마를, 어떻게, 누구한테 먼저 팔 건데? 조사 기관 보고서 한 장을 옮겨 놓고 진입 경로가 없으면 그 시장은 남의 시장입니다.

시장이 크다는 말은 경쟁자도 많다는 말이라, 그 자체로는 점수가 되지 않습니다. 큰 숫자는 평가위원을 설득하지 못합니다. 첫 손님이 누구인지가 설득합니다.

고치는 법: 큰 숫자 대신 첫 고객이 될 집단 하나를 이름 붙여 부르고, 그 집단에 닿는 방법을 한 단락 씁니다.

팀과 돈에서 또 갈린다

팀 소개가 이력서 복사본이다

대표 학력, 이사 경력, 팀원 자격증이 줄줄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왜 이 문제를 풀기에 맞는 사람인지는 없습니다. 평가위원이 궁금한 건 "이 팀이 이 일을 해낼 수 있나"이지, 이력이 화려한가가 아닙니다. 대기업 출신이라는 한 줄보다 비슷한 제품을 출시해 본 경험 한 줄이 훨씬 세게 읽힙니다. 빈자리가 있으면 누구를 어떻게 뽑을지도 같이 적어야 합니다.

고치는 법: 팀원마다 이 사업에서 맡는 역할 한 줄과, 그 역할을 해 본 경험 한 줄만 남깁니다.

사업비에 근거가 없다

인건비 얼마, 외주비 얼마, 마케팅비 얼마. 숫자는 있는데 왜 그 숫자인지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외주개발비를 3천만 원이라고 썼다면 무엇을 몇 개월 동안 누구에게 맡기는지가 나와야 합니다. 근거 없는 사업비는 "일단 많이 받아 두자"로 읽히고, 근거 있는 사업비는 그 자체로 계획이 구체적이라는 증거가 됩니다.

고치는 법: 항목마다 단가와 수량, 기간을 곱셈식으로 적고, 총액은 마지막에 더한 결과로만 씁니다.

마지막은 형식에서 갈린다

양식 항목을 건너뛴다

양식에 "보유 지식재산권"이나 "사회적 가치" 같은 항목이 있는데, 해당 없다고 비워 두거나 아예 지운 계획서가 있습니다. 평가표가 양식 항목 순서대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항목이 비면 그 배점은 그냥 사라집니다. 해당이 없으면 없다고 쓰고, 대신 그 항목의 취지에 닿는 다른 사실을 씁니다.

고치는 법: 제출 전에 양식의 항목 제목을 전부 옮겨 적고, 내 계획서에서 각 항목이 몇 쪽에 있는지 짝을 맞춥니다.

숫자에 출처가 없다

예를 들어 "3년 내 연 매출 30억 달성", "재구매율 업계 최고" 같은 문장입니다. 어디서 나온 숫자인지 없으면 평가위원은 지어냈다고 봅니다. 한 숫자가 의심받기 시작하면 그 계획서의 다른 숫자도 전부 의심받습니다. 실적과 목표를 같은 굵기로 쓰는 것도 문제입니다. 실적은 증빙이 있어야 하고, 목표는 계산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고치는 법: 실적은 증빙이 있는 것만 쓰고, 목표는 산출 과정(단가 곱하기 고객 수 같은)을 옆에 붙입니다.

다음 계획서를 쓰기 전에

평가위원은 우리 회사를 모릅니다. 계획서에 없는 것은 세상에 없는 것입니다.

여섯 가지를 다시 보면 한 줄로 줄어듭니다. 자랑이 아니라 근거를 쓰라는 것입니다. 한 계획서에 이 중 서너 개가 같이 나오는 게 보통이고, 하나만 고쳐도 읽는 느낌이 달라집니다. 제품 대신 문제, 시장 규모 대신 첫 고객, 이력 대신 역할, 금액 대신 계산식. 제가 세 번 떨어진 계획서에는 이 중 넷이 있었습니다.

Pensiv 초안이 문제 정의를 제품 설명보다 앞에 두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오늘 할 일은 하나입니다. 서랍에 있는 떨어진 계획서를 꺼내 첫 두 장만 다시 읽어 보세요. 제품 설명이 문제 설명보다 먼저 나오면, 거기서부터 고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