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 뒤쪽에 숨어 있는 조건들
자부담·소재지·선정 후 의무·중복 수혜·협약 기간, 붙고 나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먼저 찾을 다섯 가지.
선정 통보 문자를 받고 팀 단톡방에 올렸습니다. 다들 축하한다고 합니다. 이틀 뒤 협약 안내 메일이 오고, 첨부 서류에 "자부담금(현금) 입금 확인서"라는 줄이 있습니다. 공고 뒤쪽에 있던 문장인데, 그때는 눈에 안 들어왔습니다. 통장을 열어 봅니다.
지원사업에서 제일 아픈 순간은 떨어졌을 때가 아닙니다. 붙고 나서 못 받을 때, 혹은 받고 나서 후회할 때입니다. 원인은 거의 공고 뒤쪽 조건을 안 읽어서입니다. 오늘은 그 조건들이 어디에 어떻게 숨어 있는지, 무엇부터 찾으면 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자부담: 지원금이 그대로 통장에 들어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원금 최대 1억 원"이라고 쓰여 있어도 그 돈이 그대로 들어오는 게 아닙니다. 자부담이 붙는 사업이 많습니다. 총사업비 중 일부를 회사가 내야 하고, 그 일부도 현금과 현물로 나뉩니다. 현물은 대표 인건비나 보유 장비로 대신할 수 있지만, 현금은 실제로 계좌에 넣어야 합니다.
같은 예로 총사업비가 1억 원이고 지원금이 7천만 원이라면, 나머지 3천만 원은 우리 몫입니다. 그중 얼마를 현금으로 내야 하는지, 현물로 무엇까지 인정하는지가 공고에 적혀 있습니다. 비율은 공고마다 다르고 같은 사업도 해마다 바뀝니다.
그래서 숫자를 외우지 말고 공고를 열 때마다 "자부담"을 찾으세요. 현금 비율이 있으면 그 금액을 지금 낼 수 있는지 통장과 대조하세요. 못 내면 선정돼도 협약을 못 합니다.
소재지와 본사 이전
지역 이름이 붙은 사업은 대개 그 지역에 사업장이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협약 기간 내 본사 이전"을 조건으로 거는 사업도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팀이 지방 사업에 붙었다가 이전 조건을 뒤늦게 알고 포기하는 경우를 봤습니다.
이전이 조건이면 그건 지원금이 아니라 거래입니다. 사무실, 팀원의 통근, 고객 미팅까지 바뀝니다. 지원금 액수만 보고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공고에서 "소재지", "이전", "사업장"을 찾아 요건과 유지 기간을 같이 보세요.
이전만 하면 되는지, 협약이 끝난 뒤에도 몇 년을 더 머물러야 하는지가 다릅니다. 팀원에게 묻지 않고 대표 혼자 정할 일도 아닙니다. 사무실을 옮기는 건 대표의 결정이지만, 매일 출근하는 건 팀원입니다.
선정 후 의무
돈은 받고 끝이 아닙니다. 협약 기간 동안, 그리고 끝난 뒤 사후관리 기간까지 의무가 따라옵니다. 흔한 것은 셋입니다. 고용 유지(협약 시점 인원을 줄이면 안 되거나 신규 채용을 약속), 매출·실적 보고(분기나 연 단위), 그리고 기술료(사업이 성공하면 지원금 일부를 돌려 내는 제도)입니다.
특히 기술료는 연구개발 성격 사업에 자주 붙는데, 공고 본문보다 별첨 규정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후관리 기간이 몇 년인지도 봐야 합니다. 그 기간 동안 매년 보고서를 내야 한다면 담당자 한 명의 시간이 그만큼 나갑니다.
정산도 의무입니다. 지원금은 정해진 비목으로만 쓸 수 있고, 쓸 때마다 증빙을 남겨야 합니다. 사업비 카드로 결제하고 영수증과 계약서를 모아 두는 일이 협약 기간 내내 따라옵니다. 저는 첫 사업 때 이걸 대표 혼자 하다가 정산 마감 주에 사흘을 밤샜습니다. 처음부터 한 사람을 정해 두세요.
중복 수혜 제한과 협약 기간
같은 성격의 사업을 동시에 받을 수 없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이미 받고 있는 사업이 있다면 지금 보는 공고와 겹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과거 수혜 이력을 제한하는 사업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일 사업 기수혜자 제외"라고 쓰여 있으면 지난번에 받았던 사업은 다시 못 씁니다.
협약 기간도 조건입니다. 기간이 짧은데 지원금이 크면 그 안에 다 집행해야 합니다. 못 쓴 돈은 반납이고, 급하게 쓴 돈은 정산에서 걸립니다. 사업 시작일과 종료일을 우리 개발 일정과 나란히 놓고 보세요. 개발이 끝나기 전에 협약이 끝나면 결과 보고서에 쓸 게 없습니다.
공고를 열자마자 찾는 순서
저는 공고를 열면 본문을 읽기 전에 검색부터 합니다. 순서는 이렇습니다.
- 자부담 (현금 비율이 있는지)
- 소재지, 이전 (우리 주소로 되는지)
- 의무, 사후관리, 기술료 (받은 뒤 무엇을 해야 하는지)
- 중복, 기수혜 (지금 받는 것과 겹치는지)
- 협약 기간 (돈을 언제까지 써야 하는지)
다섯 개를 찾아 한 줄씩 적으면 이 사업의 진짜 조건이 한 장에 나옵니다. 그다음에 지원 내용을 읽으면 금액이 다르게 보입니다. 지원금 액수에서 자부담을 빼고, 이전 비용과 정산에 드는 시간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이 실제 지원입니다.
지금 보고 있는 공고가 있다면 닫기 전에 위 다섯 단어를 찾아 보세요. 하나라도 걸리면 그 조건을 팀과 먼저 이야기하고, 다 통과하면 그때 사업계획서를 시작하면 됩니다. Pensiv로 초안을 시작하기 전에도 이 다섯 줄은 먼저 적어 두세요. 초안은 조건을 대신 결정해 주지 않습니다. 협약 규정 별첨에 적힌 조항이 최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