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쓴 사업계획서에 빈칸이 남아 있는 이유
초안을 받아 보면 표 안에 비어 있는 칸이 있습니다. 실수가 아니라 원칙입니다. 무엇을 채우고 무엇을 비워 두는지, 그 기준을 처음으로 적어 봅니다.
Pensiv로 초안을 처음 받아 본 분들이 가장 자주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사업자등록번호 칸이 왜 비어 있어요?" 다른 칸은 다 채워져 있는데, 어떤 칸만 하얗게 남아 있으니 빠뜨린 것처럼 보이는 게 당연합니다.
빠뜨린 게 아닙니다. 일부러 비워 둔 겁니다. 오늘은 그 기준을 설명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 기준을 알고 나면 초안을 어디부터 봐야 하는지도 같이 보입니다.
계획은 쓰고, 사실은 비웁니다
기준은 한 문장입니다. 그 값이 틀렸을 때 "계획을 바꿨다"가 되면 씁니다. "거짓을 적었다"가 되면 비웁니다.
채용 시기, 총사업비 배분, 연도별 매출 목표. 이런 건 계획입니다. 공고에 적힌 사업 기간과 지원 규모에서 산술로 끌어낼 수 있고, 나중에 회사 사정에 맞춰 고쳐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채웁니다.
사업자등록번호, 작년 매출 실적, 대표자 연락처, 직원 수. 이런 건 사실입니다. 사실은 회사 서류를 봐야 압니다. 보지 않은 값을 그럴듯하게 적으면 그건 초안이 아니라 거짓 문서가 됩니다. 평가위원은 그 숫자를 사업자등록증과 대조합니다. 그래서 비웁니다.
빈칸은 표 안에만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 더 지키는 게 있습니다. 빈칸은 표 셀에만 둡니다. 문장 한가운데를 뚫어 놓지 않습니다.
"당사는 ___년 설립되어" 같은 문장은 함정처럼 보입니다. 읽는 사람이 거기서 멈추고, 문서 전체를 못 믿게 됩니다. 그래서 그 값을 모르면 그 절을 통째로 걷어내고 문장을 닫습니다. "당사는 물류 데이터 분석 기술을 바탕으로"처럼, 아는 것만으로 문장을 완성합니다.
표는 다릅니다. 일반현황 표의 "설립일" 칸이 비어 있으면, 누가 봐도 "여기는 신청자가 채우는 자리"로 읽힙니다. 원래 그런 자리입니다. 그래서 표 셀은 비워 두고, 화면에서도 PDF에서도 그냥 빈칸으로 보여 드립니다.
그럼 뭘 먼저 보면 되나
초안을 받으면 순서는 이렇습니다.
- 품질 검증 결과부터 봅니다. 초안이 나오자마자 스스로 다시 읽어 빠진 항목, 어긋난 수치, 근거 없는 주장을 찾아 고칩니다. 고친 것과 남은 것을 나눠 보여 드리니, "남은 것"부터 보시면 됩니다.
- 남은 것은 대부분 사실 칸입니다. 사업자등록번호, 연락처, 작년 매출처럼 회사 서류에서 옮겨 적으면 끝나는 값들입니다. 서류 보관함에 사업자등록증이 올라와 있으면 다음 초안부터는 이 칸이 채워집니다.
- 그다음에 계획 숫자를 봅니다. 매출 목표와 고용 계획은 공고 조건에서 끌어낸 값이라 회사 사정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여기는 "틀렸다"가 아니라 "우리는 이렇게 갈 거다"로 고치는 자리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나
솔직히 말하면, 빈칸을 남기지 않는 쪽이 더 그럴듯해 보입니다. 처음 만들 때는 저희도 그 유혹이 있었습니다. 숫자를 하나 지어 넣으면 문서가 완성돼 보이니까요.
그런데 지원사업 서류는 제출로 끝나지 않습니다. 선정되면 그 숫자가 협약서에 들어가고, 정산 때 다시 나옵니다. 지어낸 매출 실적 한 줄이 나중에 얼마나 큰 문제가 되는지는 한 번이라도 정산을 해 본 분이면 아실 겁니다.
그래서 저희는 "완성돼 보이는 문서"보다 "제출해도 되는 문서"를 고릅니다. 그 차이가 표 안의 빈칸 몇 개입니다.
모르는 것을 말하지 말고, 아는 것을 말한다. 초안을 쓰는 규칙이자, 저희가 이 서비스를 만드는 규칙입니다.
한 가지 부탁
서류 보관함에 사업자등록증과 최근 재무제표를 미리 올려 두세요. 사실 칸의 대부분이 거기서 나옵니다. 한 번 올려 두면 이후 모든 초안에서 그 칸이 채워지고, 유효기간이 다가오면 알림으로 알려 드립니다.
빈칸이 줄어드는 가장 빠른 길은, 지어내는 게 아니라 서류를 올리는 겁니다.